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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중간선거는 여전히 두 사람(바이든과 트럼프)에 대한 국민투표다.(It’s still a referendum on both of them.)”
미국 중간선거 이틀 전인 6일(현지 시간)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기사 일부입니다. 전체 상원의원(100석) 3분의 1과 하원의원 전체 435석, 36개주 주지사를 뽑는 선거이지만 사실상 2024년 대선 출마가 유력한 민주당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찬반투표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어느 정당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두 정치인 대권 도전이 가시밭길이냐, 비단길이냐가 어느 정도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중간선거 직전까지는 공화당이 상·하원에서 대승을 거둘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했습니다. 공화당 상징색인 빨강을 빗대 ‘레드 웨이브(공화당 바람)’가 거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 보니 예상과 많이 달랐습니다.
개표 진행 6일 째인 13일 현재 공화당은 하원에서 초접전 끝에 211석(미 CNN 기준)을 확보했습니다. 과반인 218석을 아슬아슬하게 넘기며 다수당 자리를 겨우 확보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상원은 최대 격전지로 꼽힌 펜실베이니아, 애리조나, 네바다에서 모두 민주당에 자리를 내줬습니다. 결국 다음달 6일 조지아 결선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민주당은 상원 주도권을 계속 유지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잠깐!
중간선거는 4년인 미국 대통령 임기가 절반 정도 지난 시점에 열려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따라서 4년마다 열립니다. 총 100석인 상원 1/3(34~35석), 하원 전체 435석, 그리고 36개주 주지사를 새로 뽑습니다. 몇몇 주는 선거관리위원장을 뽑기도 합니다.
대통령 임기 중간에 치러지기 때문에 중간선거는 현 대통령 중간평가 성격이 짙습니다. 그래서 중간선거는 ‘현직 대통령 무덤’이라고 불립니다. 역대 중간선거에서 7명을 제외한 모든 대통령이, 다시 말해 여당이 상원 또는 하원에서 의석을 잃었습니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상원 6석, 하원 63석을 잃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완벽한 패배(shellacking)“라고 말했습니다.
친(親)민주당 성향 미 언론들은 공화당 부진의 장본인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꼽고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 개인의 과격한 정치 행보가 ‘공화당=극단주의‘라는 부정적 인식을 유권자에게 심어줬고 이것이 투표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뉴욕타임스(NYT)는 “공화당은 트럼프를 따라 함께 절벽에서 뛰어내렸다”고 했고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는 그의 당에 손쉬웠던 상원 승리를 잃게 했다”고 꼬집었습니다. 뉴욕포스트는 1면 헤드라인으로 ‘트럼프티 덤프티(Trumpty Dumpty·’복구 불가능‘을 뜻하는 ’험프티 덤프티‘ 캐릭터와 트럼프를 합성한 단어)’라고 조롱했습니다.
반복되는 선거 사기 주장…피로감 느끼는 美 국민들
“1월 6일 워싱턴에서 큰 시위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 가라. (우리는) 거칠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불복에 동조하는 강성 지지자들이 일으킨 지난해 ‘1·6 의사당 난입 사태‘ 이후 미국에서는 ‘선거 사기’ 음모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선거 나흘 전인 4일 발표된 여론조사업체 갤럽 조사에 따르면 ‘선거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공화당 지지자는 40% 수준이었습니다. 같은 기관의 최근 20년 간 여론조사 가운데 가장 낮은 응답률입니다.
미국이 아직까지 음모론에 시달리는 것은 단연 트럼프 전 대통령 ‘덕분‘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다양한 선거에 대해 ‘사기’를 숨가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WP가 정리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최근 ‘선거 사기‘ 주장입니다.
“메멧 오즈가 승리했다.” (올 5월 펜실베이니아주 상원선거 공화당 후보 경선날. 일부 지역은 결과 집계 시행 이전이었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가 도둑맞는 것을 막기 위해 그랬다”고 밝혀.)
“선거가 완전히 조작(rigged)됐다.” (지난해 9월 캘리포니아주 주지사 주민소환 투표 시행 전날.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주지사직 방어 성공.)
“미국에서 치러진 어떤 선거에서 그 누구도 74% 득표율을 얻지 못했다… 트럼프가 지지한 후보가 조지아주에서 이렇게 큰 격차로 패배하는 것은 설명될 수 없다.” (지난해 5월 조지아주 주지사선거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지지한 데이빗 퍼듀 후보가 패배하자)
거듭되는 선거 사기 주장에 미국인 상당수는 민주주의가 훼손될까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8일 미 CNN방송과 에디슨리서치 중간선거 출구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중 약 7명은 ‘미국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WP는 “2020년 대선 패배 이후 그(트럼프)의 (선거 사기) 주장에 (긍정하는) 응답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후보 절반 이상 “사기 선거” 동참한 공화당
‘공화당=극단주의‘ 이미지는 비단 트럼프 전 대통령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 569명 중 적어도 291인(56%)은 공개적으로 2020년 대선 사기 주장에 동조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JD 밴스 오하이오 상원의원 후보, 마조리 테일러 그린 조지아주 하원의원 후보 등입니다.
WP는 이중 최소 170명이 승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다만 이들 대부분이 공화당 우세 지역 후보였던 만큼 이 결과가 ‘사기 선거’ 주장에 찬성하는 여론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WP는 전합니다.
지난해 공화당이 주도한 선거법 개정도 국민에게 위협감을 줬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뉴욕대 로스쿨 브래넌정의센터(Brennan Center for Justice)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21개주에서 선거권을 제한하는 42개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이 중 33개 법안은 이번 선거에서 20개 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2020년 대선 당시 최대 경합지였던 플로리다 애리조나 조지아주 등도 포함돼 있습니다.
조지아에서는 일요일 사전 투표 의무화를 폐지하고 투표하려고 줄 선 유권자에게 음료와 음식 제공을 금지하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텍사스 역시 ‘드라이브스루 투표’와 ‘24시간 투표’를 금지하는 등 부재자 투표 요건을 강화하는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공화당 후보에게 유리한 것으로 분석되는 선거법 개정 움직임이 민주당 지지자를 중심으로 사전 투표에 더 몰리게 하는 ‘역효과’를 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중간선거 사전투표자는 4500만 명을 넘어 역대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독이 든 성배’가 된 트럼프…고심하는 공화당
공화당은 고심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만을 앞세워 정치 경험 없는 후보들이 경선을 통과한 상황에서 이번 선거 부진은 예견된 일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실제 4대 격전지로 꼽혔던 펜실베이니아 상원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전폭적으로 지지한 메멧 오즈 공화당 후보의 패배는 치명적이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주·공화)마저 “결코 공화당 압승은 아니었다”며 냉소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직까지 가장 강력한 공화당 차기 대선 후보로 남아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의 뒤에는 아직도 극렬 지지자들이 남아 있습니다. 미 캘리포니아대의 올해 조사에 따르면 전체 미국인의 15%은 아직까지 “2020년 대선이 도둑맞았다”고 믿고 있으며, 이들 10명 중 6명은 정치적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제2의 ‘1·6 의사당 난입 사태’의 위협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